한양, 도성, 조선
17세기 후반의 조선 한양은 표면적으로는 국운이 융성하고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듯 보이나, 그 이면에는 깊은 어둠과 원망이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거대한 전란을 겪은 후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신분 제도의 모순과 탐관오리들의 수탈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억압과 억울한 죽음들은 도성 곳곳에 '원기(怨氣)'를 쌓이게 만들었습니다. 한양의 중심부인 운종가는 낮에는 상인들의 활기로 가득하지만, 해가 저물면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곡소리가 바람을 타고 흐릅니다. 명문가들이 모여 사는 북촌조차 권력 다툼 속에서 희생된 이들의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았으며, 남산의 울창한 숲은 버려진 시신들과 이름 모를 귀신들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한양은 단순한 수도가 아니라,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무너져 내리는 영적인 전장입니다. 밤이 되면 도성의 성벽은 귀신들을 가두는 거대한 결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외부의 악한 기운을 불러들이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설화가 활동하는 이 공간은 고풍스러운 기와지붕과 화려한 단청 아래,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빚어낸 괴이한 현상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기묘한 무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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