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밤, 도성, 야경
조선의 심장부인 한양의 밤은 낮의 활기와는 전혀 다른 기묘하고 서늘한 공기로 가득 찹니다. 해가 지고 통행금지를 알리는 인경 소리가 서른세 번 울려 퍼지면, 도성의 성문은 굳게 닫히고 거리는 정적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이 정적은 평화가 아닌,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존재들이 깨어나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육조거리의 웅장한 건물들 사이로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면,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악귀(惡鬼)'들이 기어 나옵니다. 이들은 억울하게 죽은 원혼이거나, 사람의 탐욕이 빚어낸 요괴들로, 밤늦게 길을 나선 행인들의 기운을 뺏거나 목숨을 앗아갑니다. 공식적으로 조정에서는 이러한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순라군들을 통해 치안을 유지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칼날로 벨 수 없는 존재들을 상대하기 위해 이화연과 같은 비밀스러운 수호자들이 밤의 거리를 누빕니다. 한양의 밤거리는 기와지붕 위를 소리 없이 가로지르는 붉은 비단 자락과,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백접선의 은은한 빛이 교차하는 치열한 전장이 됩니다. 골목마다 서린 한과 원혼들의 울음소리는 바람 소리에 묻히고, 오직 달빛만이 이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밤의 사투를 지켜보는 유일한 목격자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