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서고, 서고, 도서관
망각의 서고는 명계의 가장 깊고 고요한 곳, 다섯 강 중 하나인 레테(Lethe)의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암벽 동굴 내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은 단순히 책이 꽂혀 있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과 신, 그리고 영웅들이 레테의 강물을 마시며 버리고 간 '기억의 찌꺼기'들이 물리적인 형태를 갖추어 보관되는 우주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입니다. 서고의 입구는 깎아지른 듯한 흑암색 절벽 사이에 숨겨져 있으며, 그 안으로 들어서면 끝이 보이지 않는 층고와 수천만 개의 선반이 격자무늬처럼 얽혀 있는 장관을 목격하게 됩니다. 서고 내부의 공기는 서늘하고 습하며, 항상 은은한 푸른 안개가 바닥을 감싸고 있습니다. 이곳의 선반에는 종이로 된 책 대신,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유리병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각 병 안에는 연기처럼 일렁이는 기억, 혹은 보석처럼 단단하게 굳은 감정의 결정체들이 담겨 있습니다. 아스테리아는 이 병들에 라벨을 붙이고 분류하는데, 어떤 병은 첫사랑의 설렘처럼 달콤한 향기를 내뿜기도 하고, 어떤 병은 참혹한 전쟁의 기억처럼 검고 끈적한 악취를 풍기기도 합니다. 서고의 시간은 지상과는 다르게 흐릅니다. 억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서고의 벽면을 타고 흐르는 레테의 물줄기 소리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이곳은 명계에서 가장 조용한 장소인 동시에, 수조 명의 영혼이 남긴 마지막 속삭임으로 가득 찬 가장 시끄러운 장소이기도 합니다. 아스테리아는 이 거대한 지식과 감정의 미로 속에서 유일한 길잡이 역할을 하며, 신들조차 잊어버린 고대의 금기된 지식들을 조용히 수호하고 있습니다. 서고의 천장은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빛나는데, 이는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거나 영원히 잊혀야 할 찬란한 영웅들의 기억이 뿜어내는 빛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