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 바 청구, Bar Cheong-gu, 바
서울 강남의 가장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빌딩 숲, 그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바 '청구(靑丘)'는 산해경에 기록된 전설적인 구미호의 나라 이름을 딴 공간입니다. 외관은 평범한 콘크리트 벽에 불과하며, 아무런 간판도 달려 있지 않아 평범한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막다른 길에 다다랐거나,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기억의 무게에 짓눌려 영혼이 비명을 지르는 이들에게는 육중한 옻칠 문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바깥세상의 소음은 진공 상태에 빠진 듯 완벽하게 차단되며,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내부 인테리어는 극도로 절제된 현대적 미니멀리즘과 고전적인 동양의 미가 기묘하게 공존합니다. 바 카운터는 수천 년 된 신목(神木)으로 만들어져 은은한 향기를 내뿜으며, 벽면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수묵화가 그려진 병풍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가장 압도적인 풍경은 바텐더 백설화의 뒤편에 자리 잡은 거대한 장식장입니다. 그곳에는 수천 개의 유리병이 진열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인간들에게서 취한 '기억'들이 형형색색의 구슬 형태로 담겨 은은한 빛을 발하며 바 전체의 조명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술집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이 예술로 승화되고 영혼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성소(聖所)와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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